창피한 일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아기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이불에다 오줌을 쌌다.
잠에서 깨면 잤던 곳이 젖었나를 손으로 확인하면서 일어나는 게 습관이었다.
우리 집은 아침마다 이불을 내어다 말리는 게 일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이번 한번만 오줌을 싸면 마당에다 누이겠다고 엄포를 놓곤 하셨지만,
번번이 그 말은 효력을 잃었고, 오줌 싸는 일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4남매 중 내가 특히 심했다.
아마도 일주일에 4번 정도는 쌌을 거다.
오줌을 싸면 항상 욕을 먹어야 했지만, 매를 맞아본 기억은 없다.
꿈에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서
볼일을 보는 데 아무리 눠도 시원하지가 않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아, 이건 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는
아무리 몸이 무거워도 일어나서 오줌을 요강에다 싸고 다시 누웠지만,
마냥 시원하고 아침까지 푹 자면 영락없이 이불에 오줌을 쌌다.
하루는 어머니가 골체(제주어, 삼태기)를 머리에 쓰고 소금 빌어 오라고 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내성적인 성격인데 공식적으로 오줌 싼것을 알리면서
내가 어딜 가서 뭘 빌어 오겠는가...
떠밀려 밖에 나갔지만, 헤매다가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또 가서 소금 빌어 오라고 밖으로 내몰았다.
살며시 어머니 몰래 우영밭으로 가서 골체 속에 앉아 '생기리'라는 풀을 꺾어
겉껍질을 벗기고 먹으면서 놀다가 잊어버릴 만 하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가끔, 성안에서 다방을 했던 이종사촌 언니네 집에 가서 어머니랑 자고 올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시내에 간다는 말을 '성안'에 간다고 했었다.
추측하건대 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듯 싶다.
아무튼 성안에 가면 꼭 공중목욕탕을 갔다.
물 속에서 놀던 몸이 불면 때를 밀었는데,
몇 달 묵은 때가 쥐똥처럼 떼굴떼굴 굴러 떨어졌다.
목욕이 끝나면, 때로 인해 불었던 몸무게가 줄어들었는지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집에서는 먹지 못했던 맛있는 것들을 먹었다.
특히, 시원한 쥬스 종류가 참 맛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생이었던 이종사촌 언니 딸과 LP판 전축의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다가 지칠만하면 잠들었다.
거기서도 나는 영락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는 오줌싸개임을 입증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다시는 어머니가 성안에 데리고 오지 않을까 봐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십니까... 하면서 밥이라도 같이 먹을 때면
이종 사촌 언니는 내가 오줌 쌌던 일을 빼놓지 않고 얘기한다.
그 정도로 나의 오줌 싸는 일은 다반사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반 전체가 일어나서 국어 책을 들고
선생님이 먼저 읽으면 따라 읽곤 하는 시간이 있었다.
언제면 다 읽어서 손들고 '변소 갔다 오겠습니다' 하고 말할까 고민하는데
참지 못해서 그만 옷에다 실례를 해버렸다.
옷만 젖으면 그래도 괜찮다.
바닥이 마루이다보니 한 번 젖으면 마를 때까지 오줌 쌌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는 게 수치스러웠다.
선생님은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하셨다.
집으로 가려고 교실 밖을 나가는데 5학년이었던 오빠와 부딪혔다.
난, 오빠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을 거고, 갈아입을 옷이 없을 거라는 걸 뻔히 아는 나는 길거리를 배회했다.
또래들이 다 학교에 있기 때문에 거리는 조용하고 쓸쓸했다.
날씨라도 흐렸으면 좀 덜 창피하고, 울고 싶은 마음이 위로를 받았을 텐데...
찬란한 햇빛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낮은 나무 가지를 꺾어 보고 땅에 있는 풀을 뜯어보아도
갈곳 없는 나그네처럼 목적 없이 떠돌기만 할뿐이었다.
괜히 마음이 답답하고 꽁하고 서러웠다.
길에서 헤매다 보니 어느새 젖은 옷은 말랐고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 보니 청소시간이 다 되었다.
교실이 마루다 보니 초를 칠하고 줄을 만들어 꿇어앉고 바닥을 마른걸레로 빡빡 밀었다.
그러면 교실바닥이 거울처럼 모습이 비칠 정도가 된다.
내가 오줌을 쌌던 곳을 봤다.
아직도 그곳이 거무틱틱하게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 다시 수치스러움이 마음을 훑어 지나갔고, 그 날은 고개 꺾인 아이가 되었다.
다행히도 그 일로 인한 아이들의 놀림은 없었고, 아무도 나에게 '오줌싸개'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3학년 때쯤 어떤 남자아이가 변소 가다가 옷에 똥을 쌌던 일은
두고두고 동창생들의 얘깃거리가 되었고,
지금도 나의 머리 속에는 그 애의 모습과 함께 '옷에 똥싼 아이'라는 생각이 교차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그 애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는 지 모르겠다.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차비를 아끼기 위해 이모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남의 집에 와서도 오줌쌀까봐 신경 쓰느라고 며칠동안 거의 잠을 못 잤다.
다행히 자다가 중간에 한 두 번 깨어서 볼일을 보면 괜찮았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이불에 오줌을 싸는 습관이 사라졌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1박 2일로 도일주 하던 날...
우리는 서귀포 여관에서 1박을 했다.
1년 반 동안 오줌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아무 걱정 없이 푹 잤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오줌을 싼 것이다.
다른 애들은 거의 다 일어나서 이불도 개고 치장도 하는 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너무 창피해서 어떻게 하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힘입어,
같은 조 애들에게 '나 오줌 싼 것 같아'하고 얘기를 했더니,
우리 조 애들은 오히려 나에게 위안을 해 주었다.
"걱정하지 마, 우린 모른 척 할 테니까"
정말 우리 조였던 그 애들은 나의 수치를 한마디도 밖에 내뱉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고마움을 느낀다.
그 이후로 잠을 못 자면 못 잤지 이불에 오줌 싼 기억은 전혀 없다.
지금은 6살 된 조카가 가끔 이불에 오줌을 싼다.
그 때마다 조카는 누가 뭐라고 할까봐 울기부터 한다.
나는 조카를 꼬옥 안아주면서 '괜찮아... 고모는 더 많이 쌌었는 걸...' 하고 말하면
조카는 자기보다 더 많이 쌌다는 말에 위안을 받아서인지 금세 웃는 얼굴이 된다.
왜 그렇게 오줌을 쌌는 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단지,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구조가 조금 다르지는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학교를 다닐 때도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한 번은 선생님께 얘기하고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난, 지금도 다른 사람보다는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다.
그래서 시외버스를 타거나, 오랫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할 곳을 갈 때는 왠지 불안하다.
처음 가는 곳이 어디든지 나는 화장실이 궁금하다.
커피숍을 가든, 모임을 가든 의자에 앉게 되면 나는 쉽게 나갈 수 있는 쪽을 택한다.
그래야 남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맘대로 화장실을 갔다올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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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의 사진입니다.
제목은 - 삼양바다, 별도봉 그리고 한라산 -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한라산이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이 별도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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